과학과 윤리학, 그리고 환경윤리학

 

1. 서문

21세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화두는 환경이다. 우리의 일상 자체가 환경에 대해서 흔적을 남기며, 경우에 따라 그 흔적은 치명적인 것으로 판명된다. 야생의 자연, 즉 습지나 갯벌/삼림/초지/열대림은 개발되고, 개간되고, 간척되며, 포장되고 과도하게 방목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현실을 두고 우리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반대로 낙관주의이다. 낙관주의는 ‘소박한 과학기술주의’로 불리며 더욱 효과적인 대체 에너지의 개발 즉 기술을 개발하거나 핵융합을 하거나 지속 가능하고 생산적인 기술을 개발하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책정함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을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희망으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과학기술에 입각한 낙관주의는 문제가 신속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과 함께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다.

환경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존재 가치와 관련된다. 따라서 환경문제는 윤리학적/철학적 문제이다. 과학의 객관성은 신화다. 환경문제는 과학과 실험실이 아니라, 밀실에서의 협의가 아니라, 정치 관료의 정치적 선택에 의해서가 아닌, 시민의 공정한 참여와 공개토론, 그리고 철학적/윤리학적으로 충분하고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2. ‘과학의 객관성의 신화’와 윤리문제

환경문제를 구체적인 기술적 문제로 취급하는 것과 환경문제를 구체적인 영역 안에 제한하는 것은 위험스런 생각이다. 그 이유는 환경문제가 과학/경제학/공공정책/법/의학/공학/철학 등을 포괄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환경문제에 대해서 기술적인 ‘신속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단지 전체 문제를 좁고 지엽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것뿐이다. 우리가 부딪치는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바로 이러한 과학기술적 해결이 초래한 것이다.

우리 문화의 심층에는 과학이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이라는 객관성의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자의 개인적/주관적/임의적 편견의 결과이다. 과학적 실험은 증명을 통해서 지지될 수 있는 가설을 최소화시키고, 편견을 제거하도록 하고, 결과를 증명하고, 결론을 제한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과학의 결과에 합리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과학적 방법 속에 숨겨진 가설이 미치는 영향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환원주의(reductionism)는 생태계 내에 존재하는 복잡성의 관계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문자 그대로 환원주의는 나무를 보는 데는 성공했을지라도 숲을 보는 데는 실패했다.

동물의 행동을 환경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며 유전적 프로그램에 의해서 통제된다고 본다면, 이것은 기계론적 해석이다. 이것은 동물의 행위, 즉 ‘자연의 법칙’을 불변하며 결정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과학에서 기계론적 환원주의의 문제는 과학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는 과학의 한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에너지 문제를 공급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가장 합리적인 원자력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 점에서 과학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문제를 수요의 문제로서 이해한다면 에너지의 효율성과 적절한 기술 등에 대해서 물을 것이다. 비록 원자력과 같은 전력을 이용한 가정 난방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대체 자원에 비해서 비이성적(unreasonable)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적 접근은 극단적인 고비용의 대가이다. 정부와 기업가가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관한 것인 이상 이러한 상황 아래서 수행되는 과학이 언제나 정부와 기업체가 요구하는 해결책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과학이 제공하는 전혀 다른 해답은 이들 과학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환경과 관련된 문제에서 필요로 하는 유용한 지식과 기술은 과학자들이 묻고 있는 물음의 형식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과학은 인간의 행위와 자연환경에 인상적인 통제와 설명을 해왔다. 이제 우리는 과학이 환경문제에 대해서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한다. 과학의 발견이 합이성적이고 진실 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실질적인 이용에 따라 형성되는 과학 지식은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환경철학의 역할은 환경정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에 숨어있는 가치 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3. 과학과 윤리의 적절한 관계

환경문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과학과 윤리가 우리가 소망하는 의미 있는 진보를 위하여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망을 오래된 철학적 잠언에 적용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 “윤리학이 없는 과학은 맹목이며, 과학이 없는 윤리학은 공허하다.”(Science without ethics is blind ; ethics without science is empty.)

우리가 윤리학의 추상적인 관점을 거부하고 윤리학과 환경문제간의 적절한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유익한 첫단계는 실천적인 규칙을 윤리학에서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① 대부분의 윤리학은 규범적 판단을 정당화하고 지지한다. 환경윤리학은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충고의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경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지식에 기초를 둔다. ② 윤리학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인식하기 위한 능력까지 경험과학의 지식에 의존한다. 윤리학적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함으로서 소박함과 단순함에 기초하고 있는 윤리학적 판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③ 철학자에 의해서 수행된 윤리학적 분석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모험적이다. 추상적인 개념들은 그것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해석이 주어지지 않는 한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더욱 실천적인 수준의 것으로 윤리학적 개념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회적/과학적 사실에 관한 지식이 요구된다. ④ 철학자들은 이들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자 할 때 기준이 되는 정식(定式)을 제공한다. “당위(ought)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이 정식(formula)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토의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 할 수 있는 것이고 할 수 없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인류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즉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기를 요구한다.

일부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순수하게 개념적인 문제로서 이해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주장은 현실적으로 무엇이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과 사회학/심리학/과학의 업적에 빚을 져야 한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대해서 신중해야 한다. 또, 우리 공통의 사고방식에 따른 편견과 한계를 경계해야 한다.

 

4. 환경윤리학이란?

일반적으로 환경윤리학은 인간 존재와 인간이 속한 자연환경 사이의 도덕적 관계에 관하여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환경윤리학은 자연세계에 대한 인간의 행위가 도덕적 기준에 의해서 통제될 수 있고, 통제된다는 것을 가정한다. 환경윤리학이론은 ① 이들 도덕적 기준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② 누구에게 또는 무엇에게 인간이 책임을 져야 하며이러한 책임을 어떻게 정당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

환경윤리의 다양성은 이들 문제들에 대해서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연환경에 관해 간접적 책임성으로 이해되거나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검토하기 전에 우선 윤리학 그 자체에 관한 더욱 일반적인 용어를 생각해 보자.

 

5. 기술윤리학의 의미와 성격

기술적(descriptive) 의미에서 볼 때 ‘환경윤리학’은 환경운동과 관련된 가치들은 무엇이나 나타낸다. 기술윤리학은 윤리적 신념들을 요약하고, 진술하고, 분류하고, 설명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모든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윤리적 문제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윤리적 문제를 깨닫고 이것의 실천적 측면을 알기 위해서 윤리학을 배울 필요가 있다. 환경윤리학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해방식으로 이해하면서 놓쳐버릴 수 있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기술윤리학의 일차적인 목표는 우리의 견해와 의식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우리의 사고가 우리를 제약하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6. 규범윤리학과 철학적 윤리학

윤리적 추론의 다른 영역은 윤리적인 판단, 권고의 제시, 윤리적 평가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윤리학에서 윤리적 추론을 말할 때, 그것은 규범윤리학(normative ethics)이다. 또는 기술윤리학과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규범윤리학(prescriptive ethics)이다. 규범윤리학은 행위를 묘사한다. 규범적 판단이 함축하거나 명백히 의도하는 것은 윤리적 행위의 기준이나 준거를 나타내는 것이다.

환경에 관한 많은 논쟁들은 규범윤리학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가 규범윤리학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욱 추상적인 사고의 수준으로 옮겨가기 위하여 규범적 수준에서 철학적 윤리학의 수준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검토할 영역은 철학적 윤리학(philosophical ethics)이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윤리학의 본질은 개념들을 명확히 하고, 규범적 판단을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논거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환경윤리학은 규범적 판단의 평가와 체계적 연구를 포함하는 철학의 한 영역이다. 또한 환경윤리학은 다양한 환경보호주의(environmentalism)의 한 영역이다.

환경윤리학은 우리가 환경문제의 복잡성에 따른 환경적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환경윤리학은 무비판적인 우리의 윤리적 맹종에서 나오는 흉내 내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환경윤리학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 즉 “환경에 관한 의식의 서로 다른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환경윤리학을 연구함에 있어 우리는 많은 규범적 판단을 제안할 것이고, 이러한 주장들의 지지 이유와 근거들에 대한 평가를 요구할 것이다. 철학적인 수준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철학적 배경이나 이론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규범적인 주장들을 요청하며 이들 주장과 관점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철학적 가정을 평가하고 검증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윤리학은 우리의 특정한 규범적 판단으로부터 체계적이고 통일된 윤리적 관점을 지지하고 명료화함으로써 ‘이론으로 확립’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다.

 

7. 요약 및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과학과 윤리의 적절한 관계를 모색해 보았고, 환경윤리학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 환경윤리학의 구체적인 영역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러한 간략한 검토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철학 또는 윤리이론들이 오늘날의 환경문제와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으며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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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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