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 - 야생의 자연, 그리고 윤리학
1. 서문
생물 중심 윤리학은 생물 그 자체를 도덕적 지위의 기준으로 삼아서 비인간중심적이다. 최근 생물 중심 윤리학은 윤리적 특성과 성격, 그리고 태도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생태 중심 윤리학에 따르면, 적절한 환경윤리학은 살아 있지 않은 자연 대상/생태계/관계, 그리고 과정에 대해서도 도덕적 고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이 윤리학은 ‘전체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 중심 윤리학은 그 근거를 생태학에 의존하고 있다. 생태학이란 살아 있는 각각의 유기체들과 살아 있지 않은 환경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태론자들은 이들 체계의 상호작용과 의존성을 설명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생태론자들은 개별 유기체보다는 그것들 사이의 상호 의존성을 더욱 강조한다.
생태 중심의 윤리학에서는 개별 유기체보다는 이들 유기체에 의해서 형성된 생태학적인 공동체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따라서 ‘개체 중심’윤리학이라기 보다는 ‘전체론적’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야생의 자연상태(wilderness)는 환경과 관련된 많은 논쟁에서 가장 우선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따라서 야생의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가치는 생태 중심 윤리학의 주요 주제가 된다.
2. 야생의 자연 : ‘관리’에서 생태 중심으로
1964년의 야생의 자연에 관한 법안에서 야생의 자연상태는 “지구와 지구의 생명공동체가 인간으로부터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워야 하며, 인간 자신은 잠시 머무르는 방문자일 뿐이라는 것이다”라고 진술한다. 야생의 자연상태는 인간의 행동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지역을 상징하므로 연방정부로 하여금 개발로부터 그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공유지를 남겨두도록 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지구상에서 야생의 자연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거주와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야생의 자연상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야생의 자연지역에 대한 능동적인 관리와 보존이 요청된다.
레오폴드(A. Leoplod)는 “하나의 사물은 그것이 생물공동체의 원래 그대로의 상태, 안정,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전하려고 할 때 옳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반대되는 경향이 있을 때 그르다.”라고 가르치며 이는 생태 중심 윤리학의 근본 지침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강조하는 ‘생물공동체’는 생태윤리학의 중심이 되었다.
3. 야생의 자연에 대한 사고 : 고전적, 퓨리턴, 로크, 그리고 낭만주의 모델
야생의 자연에 대한 정책의 결정은 우리가 야생의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미국인들이 야생의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 왔는지에 대해서 네 가지 모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① 고전적 또는 성서적 모델
유태 기독교적 전통과도 일치하는 야생의 자연상태에 관한 고적적인 견해는 야생의 자연상태는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곳이며, 그곳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위험스러운 곳이라 보았다.
성서에서 상징하는 야생의 자연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야생의 자연상태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사탄의 고향인 것이며 그곳은 에덴동산과 대립되는 주체이자 ‘저주받은’땅이라 는 것이다.
② 퓨리턴 모델(The Puritan model)
야생의 자연은 실제로 ‘사탄의 소굴’이었고, ‘사탄의 덫’에 걸린 ‘야만’의 고향이었으며, ‘인간은 사탄의 노예로서 야수로 바뀌었다.’라고 퓨리턴은 기록한다.
퓨리턴 모델은 야생의 자연상태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즉 그것은 피할 수 있는 반면 공포스러운 지역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곳은 학대로부터의 도피를 나타내며, 그 땅 자체가 약속받은 땅이 아닐 경우 최소한 임시적으로 약속받은 땅을 세울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퓨리턴 모델은 야생에 대한 공격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태도를 조장했다. 야생의 자연상태는 길들여져야 하고, 새로운 땅은 정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보았다.
초기의 퓨리턴 모델은 야생의 자연상태를 더 좋은 삶을 증대하기 위한 자원의 공급처로서 이해하였다.
③ 로크적 모델(Lockean Model)
신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야생의 자연상태를 주었다. 따라서 개인의 진취적 기상과 야망을 통해서 야생의 자연은 개인의 노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개인의 재산(소유)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야생의 자연은 ‘바로 그곳에서’ 소유를 기다리고 있는 수동적 존재이며 황무지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용을 위하여 잠시 버려진 것일 뿐이다.
이 모델은 초기 환경보호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야생의 자연은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보호되고 통제되어야 하는 자원인 것이라 핀쵸트는 보았다.
④ 낭만주의 모델(The Romantic model)
오늘날의 환경운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이 입장은 야생의 자연을 순결함과 순수함, 그리고 신성함을 상징하는 곳으로 이해한다. 야생의 자연은 오염되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은 채 남겨진 마지막 자연지역이며, 인간이 더렵혀진 문명의 영향으로부터 돌아갈 수 있는 피난처라고 본다.
루소는 로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삶의 형태와 반대되는 ‘자연상태’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루소에게 자연은 진실되고, 미학적이며, 공정하고 덕스러운 것이지만 사회는 인간의 삶에 인위적 욕구, 이기심, 불평등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렇게 볼 때 인간의 본성에 관한 본래적 선은 자연 그 자체의 본래적 선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의 이와 같은 신념은 에머슨과 소로우의 낭만주의에 영향을 주는데 그들은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적 경험주의와 합리적분석을 부정하였다. 즉 현실 세계에 대한 이해를 ‘초월’(transcendent)할 때 세계에 대한 참된 이해가 가능하다.
유럽의 낭만주의와 결합한 이와 같은 미국의 철학적 운동을 초절주의(超絶主義, transcendentialism)라고 부른다. 즉 실재에 대해서 더욱 심오한 이해를 하는 것이며, 실재에 대한 과학적/기술적 분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낭만적인 전망은 쿠퍼(J. F. Cooper)의 ‘레더스토킹 이야기’(Leatherstocking Tales)속에서 더 충실하게 관찰할 수 있다. 주인공인 내티(Natty)는 야생의 자연 가정에 있으며, 그 야생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지만 진보하는 문명화에 밀려 서부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내티를 통해서 야생의 자연에 대한 상실을 슬퍼해야 하고, 진실성(authenticity)과 정직(integrity)의 더욱 소박한 삶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슬퍼해야 한다.⑤
4. 낭만주의 : 비판적 성찰
낭만주의 모델은 오늘날 환경운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소로우는 자신의 저서에서 야생의 자연에 관한 보호를 요청하는 글을 쓰면서 야생의 자연상태가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초월주의를 펼쳤다.
낭만주의는 야생의 자연에 대한 빛을 밝히는 이해방식의 한 가지이며, 우리에게 야생의 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준 모델이다. 이제 이 낭만주의 모델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자.
① 유럽의 초기 이민자들이 그리고 있었던 상상이 야생의 자연과 동일시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② ‘훼손되지 않은 야생의 자연’을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온화한 곳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낭만주의의 야생의 자연에 대한 묘사가 실제 자연의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③ ‘전(前)-다원주의’(Pre-Darwinian)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낭만주의는 인간을 자연과 분리하여 이해하고 있으므로 인간과 자연에 관한 이와 같은 이원론적 조망은 오히려 도덕적 위계질서와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④ 야생을 변화하지 않는 정적이고 원래 그대로의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구 위에서 인간의 행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 ‘불변하는 야생의 자연’이란 가정은 자연적 진행과정이라는 생태학적 실재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태주의자들은 훼손되지 않고 불변하는 자연관을 거부한다. 야생의 자연은 정적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변화와 진화는 정상적이고, 일관적이며, 항구적인 것이다. 보트킨(D. Botkin)은 그의 저서 ‘조화되지 않는 조화’(Discordant Harmonies)에서 “생물권에서의 변화는 본래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생명이란 변화에 적응하고 의존하는 것이다”라고 보았다.
5. 자연에 관한 생태학적 모델 : 유기체 모델/공동체 모델/기능적 모델 그리고 에너지 모델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는 독일의 생물학자 헥켈(E. Ernst Haeckel)이라고 알려져 있다. 헥켈은 그리스어인 oikos(가족 또는 가정의 의미)와 logos(에 관한 연구)를 결합하여 생태학(ecology)이라 하였다. 따라서 생태학은 가정 또는 환경의 살아 있는 유기체를 연구하는 학문이 되었다. 이제 이 생태학에 관한 다양한 모델들에 대해서 검토해 보자.
① 유기체 모델(organic model) - 이 모델은 각각의 종은 신체의 각 기관이 자신의 신체와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자신의 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델은 유기체를 전체와 부분의 관게로 이해하고 변화를 발달 또는 성숙의 용어로 설명한다.
미국의 생태학자인 코웰즈(H. Cowles)와 클레멘트(F. Clements) 두 사람의 연구에 기초를 두고 있는 유기체모델은 특정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천이(遷移)과정을 조사한다.
클레멘트의 식물의 천이과정이 주어진 지역과 기후에 알맞게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영속적인 증대를 지향하면서 발달한다는 극상(極相)의 공동체를 ‘복잡성의 유기체’(complex organism) 그 자체로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체는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보다 높은 위계 속성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유기체적 존재를 형성하는 것이다.” “일군(一群)의 식생과 극상의 형성은 유기체적 실재(entity)라고 할 수 있으며 자연적 천이는 조직(formation)의 번식과정인 것이다.”
② 공동체 모델(community model) - 이 입장은 자연을 공동체 또는 사회로서 이해한다. 따라서 부분은 전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변화란 상호작용(interactions)과 상호 의존성(mutual dependencies)의 의미로 이해되었다. 생태학은 이 모델을 통해서 자연의 ‘가족’(nature's household)을 연구한다.
이 공동체 모델은 또 종들간에 경쟁과 갈등을 강조하는 다원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활용되기도 했다. 이 모델은 안정적인 동일화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자연의 가족’을 연구한다는 것은 ‘자연의 유기적 조직’(nature's economy)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모델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는 영국의 동물학자 엘튼(C. Elton)이다. 그는 ‘동물의 사회경제학’이라고 표현하면서 통합적이고 성숙하게 상호 의존하고 있는 유기적 조직으로서의 자연을 묘사하고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③ 기능적 모델(functional model) - 각각의 구성인자는 체계 속에서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에 있어서 동일시된다. 체계 그 자체는 유기적 조직으로 이해된다. 자연의 법칙은 먹이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그리고 소비하는 과정으로 묘사되며 따라서 먹이사슬 내에서 개별 종의 기능 또는 역할은 무엇을 먹이로 하고 무엇의 먹이가 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④ 에너지 모델(energy model) - 영국의 생물학자 탄슬레이(A. Tansley)는 ‘에너지’와 ‘생태계’ 같은 더욱 객관적인 언어로 공동체의 언어를 물리학적으로 대체하였다. 에너지 모델에 의하면 생태학적인 전체는 에너지 또는 순환체계로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생태계가 물리학적인, 그리고 수학적 시스템과 똑같은 것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나아가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생물과 비생물 사이의 구분이 무너졌다. 생태학자는 다양한 화학적/생물학적, 그리고 기후의 순환의 흐름을 오로지 에너지라는 용어를 가지고 생태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6. 요약 및 결론
‘전체론’의 가장 쉬운 이해는 “전체는 그 부분들의 합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 속에는 철학적 복잡성이 놓여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전체론(metaphysical holism)이다. 형이상학적 전체론은 전체가 참된 것이며, 그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보다 더욱 참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기체 모델은 형이상학적인 전체론을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클레멘트(F. Clements)가 ‘유기체적 존재의 새로운 유형’이라고 했을 때, 이를 구성하고 있는 ‘복잡성의 유기체’는 그 자체로서의 ‘극상의 공동체’이다.
전체론의 두 번째 의미는 방법론적/인식론적 전체론(methodological or episemological holism)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방법론적 전체론은 다양한 현상을 어떻게 가장 잘 이해하고 알 수 있는가를 강조 한다. 또 체계를 전체로서의 상호 의존성의 체계로 바라볼 경우에만 비로소 적절한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의미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적 전체론(ethical holism)은 도덕적 배려 가능성을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리학적 전체론자들은 윤리적 지위 또한 관련된 비개체적 존재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옳음과 그름은 어떤 것이 전체 공동체를 위하여 좋거나 나븐 기능을 하는가를 문제삼는 것이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인자들에게 좋고 나쁜지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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